모에 보이스 쿠소자코 주자의 이야기 127화
최후의 시련(축복)으로
"역설적이구나, 누구보다도 인간답고, 자신다우려고 한 네가 우리와 똑같이 되어가고 있어"
"...그때 그때 마음 가는대로 살아가고 있어서"
별이 뜬 하늘 아래, 무지갯빛 결정이 되어 있는 대지에 시오리와 쉐무하가 서 있었다.
여기는 시오리의 의식 안의 풍경, 그 증거로 '피닉스' 또한 그 장소에 내려섰다.
"너는 정말로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군... 영원한 생명 다음에는 신의 힘이라는 규격 외의 힘, 아니 신 그 자체인가. 세계는 어지간히도 네가 사람으로서 살아감을 허락하지 않는구나"
"무엇인가 했더니. 우리들이 예상치 못하게 태어난 이단종(이레귤러)까지 기르고 있는가... 이래서야 더더욱 평범한 사람으로 살 수 없을테지..."
쉐무하는 피닉스를 알고 있었다. 아눈나키가 관여하지 않은 방법으로 자연에서 태어난 불가사이한 초상생물.
몇 번이나 이루어진 대멸종을 손쉽게 극복하고 인간의 시대까지 살아남았지만 그다지 커다란 영향을 주지 않기에 묵인한 존재.
하지만 그 '힘'은 이해하고 있다. '미래'에 존재가 확정되었기에 설령 죽는다고 해도 다시 소생한다는 트릭이다.
"저는... 신이 되던, 불사신이 되던 상관없어요. 그저 모두의 곁에 있고싶어요"
"안타깝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이 별은, 사람의 세상은 슬플 정도로 '훌륭하게' 자라버렸지. 신은 더이상, 이 별의 사람들에게 필요 없다"
쉐무하는 기쁜 듯 하면서도 쓸쓸하게, 시오리에게 미소를 보였다.
"설령 폐기된 단편이라고 해도 신을 사람의 몸으로 격하시키고, 2000 년 동안 이어진 신죽이기의 저주를 덮어쓸 수 있었던건 너 하나의 힘이 아니다... 너에게 그 힘을 준건 인간이다. 너를 생각하는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너는 더이상 스스로가 원하는대로 살아갈 수 없어"
카가미 시오리의 존재방식은, 지금에 와서는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이 바라는 구세주라는 형태로 밖에 카가미 시오리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너는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이 땅을 떠나 이정표 없는 여행을 떠날지, 그렇지 않으면 이 땅에서 헛되이 죽을 것인지"
"당신은... 당신은 어떻게 할건가요, 쉐무하"
"나는 언젠가 눈을 뜰 단편과 합일해, 또다시 별의 바다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하지만 뭐, 그 전에 달의 저주를 풀고 엔키에게 사과할 셈이다만"
한 때 모든 것을 하나로 이어서, 완전한 생명의 축복을 목표로 하던 여신은 사람의 가능성을 보았다.
고독함에 눈물짓는 것도, 서로를 상처입히는 고통도, 모든 것이 축복이라고 믿은 소녀들을, 그녀들을 지지해주는 이들을 보고, 인간에게 미래를 맡기기로 결심했다.
그렇기에 소녀에게 최후의 시련을 내렸다.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온다. 그러니 시오리, 나에게 가능성을 보여주거라"
그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잇던 시오리가 핫, 하고 얼굴을 들었다. 평온하고, 마치 어머니와도 같은 자애를 띈 미소를 지은 쉐무하가 말했다.
"너희들이 보여준 것은 우리들 신마저 알지 못하는 빛. 그렇다면 내가 이끌어낸 답 이외의...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겠지?"
---
마치 요새와도 같은 격리 시설. 암살이나 탈주의 위험이 있는 대죄인을 가두기 위한 특수형무소다.
연금술사나 닌자 등의 인지를 초월한 위험인물을 구속하기 위한 장소에 시오리가 와 있었다.
"뭐야, 날 비웃으려고 온거니"
"아니,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웃을 수도 없어서"
상대는 한 때 혼돈이었던 소녀, 자해하려고 했지만 너무나 육체가 허약한 나머지 고통에 몸부림치며 뒹구는 꼴사나운 짓을 했다고 한다.
"...그럼 뭐야?"
"이 우주에 대해 알고싶어"
"하아, 과연... 대강 그 힘 때문에 여기엔 있을 수 없게 되었다는, 그런건가"
"뭐 그것도 있지만, 선택할 때 참고하고 싶어서"
과한 힘을 가진 존재는 무리 속에서 살아가기엔 지나치게 성가시다. 그것은 어디에 속해도 바뀌지 않는다.
"뭐 이것저것 있어. 그야말로 인간의 말로는 다 표현하기 힘든 존재가 산처럼 있지. 여행을 떠난다면 추천할게... 사고만 조심한다면 말야"
"사고는 무서우니까..."
자신을 이런 허약한 그릇에 가둔 상대임에도, 더이상 증오도 분노도 느끼지 못했다. 혼돈이었던 소녀는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자신은 아마도 썩어 문들어질 때까지 이 감옥에서 살아갈 몸이라는 점. 쇠창살 너머로밖에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몸.
분명 속죄도 하지 못하고, 용서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그것을 원한다.
'한가지, 너에게 부탁이 있어... 난 더이상 혼돈조차 아니야. 그래서 이름이 없어... 그러니까 이름을 지어주지 않을래?"
"내가 당신의 이름을...?"
이름을 짓는 것. 그것은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카가미 시오리는 자신을 쓰러트리고, 사람의 몸으로 격하시킨 존재이지만 그녀가 자신을 인정해주었으면 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부탁할게. 너에게 혼돈이라는 이름마저 빼앗겼어. 여기 사람들이 사정청취를 할 때도 번호로 부르는 게 큰일인 것 같으니"
돌연한 억지에 시오리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어휘를 검색해 그럴듯한 이름을 생각했다.
혼돈, 검은색, 츠바사를 원본으로 한 호문쿨루스...
"하구로(羽黒,검은 날개)는, 어때?"
"대충대충이잖아"
"뭔가 문제라도?"
"아니, 대충이지만 좋은 이름이야... 나 따위에겐 아까울 정도로..."
결코 그녀의 죄를 용서할 셈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정도는 해줘도 되겠지, 하고 시오리는 한숨을 쉬었다.
"슬슬, 할아범 쪽 상대도 하러 가지 않으면 안 돼서... 오늘은 이 쯤 해둘게. 그럼"
"응, 또 봐"
하구로는 마음 속에서부터 시오리와의 재회를 바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
"바넷사 씨와 여러분이 와줘서 정말로 살았어요"
"괜찮아, 이건 우리들을 위해서이기도 하니까"
본부에선 엘프나인의 연구를 노블레드 삼인방이 돕고 있었다. 지금까지 S.O.N.G.에서 하나뿐이었던 연금술사에 바넷사가 더해져 둘로, 덤으로 조수 일 정도는 할 수 있는 밀라알크와 엘자 두 명이 추가된 것으로 엘프나인의 일의 효율이 폭발적으로 상승해 적당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나저나, 카가미 준위의 그 힘으로 우리들도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기뻐했는데 말야~ 설마 '다른' 힘이었을 줄이야 맹점이었다고"
"맞아요.. 그것은 신에게서 여러가지 것을 떼어내 남아도는 에너지로 사람의 형태를 구축한 것이에요. 설령 여러분에게 쓴다고 해도... 그저 조각난 시체가 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도 그만큼 우리들은 엘프나인에게 기대하고 있다고? 이미 파나케이아 유체의 독성을 중화시켜서 활동시간을 늘려줬으니 말야"
사람의 몸으로 돌아가기엔 아직 멀다. 하지만 희망이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괴물이 된 이들에게 있어선 구원이었다.
"그런데 카가미 준위는... 어떻지 말입니다"
"...지금의 저로서는 '규격 외'의 힘이 깃든 시오리 씨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은..."
"우리들은 사람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은 더욱 높은 차원에 이르려고 하고 있어..."
지금,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이곳에서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에요. 저는... 저희들은 시오리 씨의 손을 놓지 않을거에요...! 그 날, 목숨을 바쳐서 저를 구해준 그 손을...!"
그럼에도 엘프나인은 세계가 강요하는 잔혹함에, 저항함을 포기하지 않았다.